26회(1959년 졸업)
글 수 163
새재
이경림
칠흑의 새재를 넘어 보고야 알았다
한 재가 얼마나 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지
골짜기들은 또 얼마나 깊은 어둠을 품고 있는지
새들도 넘지 못한다는 재를 칭칭 감으며 낡은 승용차가
위태롭게 내려갈 때
골골의 어둠이 노랗게 언 달을 밀어 올리고
한 치 앞의 벼랑이 시간을 자꾸 헛바퀴 돌릴 때
우리는 생사의 경계 위에 선 아버지를 보았다
온 산에 슬픔이 달빛처럼 번지고 있었다
누구였는지 문득 넋 없는 사람처럼
재 아래 어른거리는 어린 날을 끄집어냈다
바람나 재 넘어간 옥자 얘기 구랑리에서 떼죽음 당한
어느 一家의 얘기,
육이오 때, 목숨 걸고 재를 넘겨준 가복의 애기며
난리통에 관문 속 어느 골짜기에 묻히신 증조부 얘기를
두서없이 중얼댔지만
두려움보다 재는 높고 슬픔보다 길이 더 휘어
끝내 우리는 말을 잃었다
그러나 누군들 몰랐으리
그 모두 한 재가 토해낸 한숨이라는걸
그 숨으로 깊어진 골짜기라는걸
그것이 밀어올린 봉우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