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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회(1972년 졸업)
  39회 게시판     

조뜨니경 1부

조회 수 11015 추천 수 0 2014.12.29 20:42:20

    조뜨니경 1부


때는 바야흐로

1841년 겨울

조선24대 헌종7년


경상도 문경땅

산세도 험한 주흘산 자락의

여궁폭포를 한참 거슬러 올라

천하명당에 자리한 천년고찰


조선팔도 일만이천여 사찰중에서

기도빨이 가장 잘 듣는다고

소문난 곳이다


영남의 수재들이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도

반드시 들러서 삼천배를 드리고

장원급제를 빌고 갈 정도다


주지스님이 법당에서

흰 소복에 고운 자태의

청상과부를 뒤로 하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


완장리 벌바위 민참봉댁

삼남이녀중 막내로 태어난

미정!

美아름다울 미  貞 곧을 정

여자로서의 몸과 마음을

늘 정갈하고 아름답게 가꾸며

올바르게 살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녀는 불과 다섯살 때

서당에 다니던 둘째 오라버니의 어깨너머로

천자문을 뗄 정도로 총기가 있었다

이후 명심보감이며 소학등을 익히고

사서삼경도 틈틈히 수학하였다


미정이 열일곱 되던 어느 봄 날

둔덕산屯德山에는 여느해처럼 진달래 꽃들이

다홍 연지 자주 빨강 주황 등

저마다의 온갓 자태를 뽐내며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동무들과 그 특유의 쌉싸름하고

달짝지근한 진달래 꽃잎들을

한움큼씩 입에 넣고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그리고는 진보라색 혀를 서로 내밀며

배꼽을 잡고 깔깔 거렸던 기억들


그 화려하고도 친근했던 꽃잎들이

서서히 질 무렵부터는

동무들과 고사리며 참취 수리취 고비  원추리

잔대싹 우산나물 삽주싹 다래순 햇잎 두릅

더덕 도라지 등

이루 말 할수 없으리 만치

많은 종류의 먹거리들을 채취하러 오르내렸던

정들었던 둔덕산!


소쩍! 소쩍 !

솥적다! 솥적!

솥적다! 솥적!

소쩍새가 많이 울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정에게

시집가는 해에 풍년이 들면

평생 굶지 않고 잘 살거라고

애써 위안을 하셨었다


정말 용이 승천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고

가까이 가기엔 조금 두려웠던 용추龍湫!


가뭄이 극심할 때는

그곳에서 동네 어른들이

돼지를 잡아

반석 위에다 피를 뿌리며

기우제를 지내던 모습들


또한 대야산에서 발원한 옥수들이

용추를 지나

둔덕산 옥수들과 합수하여

학천정에 도달하면

하얀 반석이 오리나 펼쳐져서

창해를 향한 벽계수의 길을 인도 한다

바로 선유동 계곡仙遊洞 溪谷이다


여름날

낮에는 햇빛에 반사되어

갖가지 보석이 되곤 하던 개울


그리고

밤이면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은하의 별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던 그 개울


해질녘 동네 아낙들을 따라서

골뱅이와 가재를 잡고

반딧불을 등불삼아 멱을 감던 개울

아름다운 추억들이 서린 선유동 계곡!


사랑하는 가족들!

늘 미정을 예뻐해 주시던 동네 어른들!

소꿉장난 하며 함께 자랐던

정답던 동무들..


이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 간다


이제 작별이다


미정은 꽃가마를 타고 갈전으로

시집을 가는 중이다


어머님이 손수

자수를 놓고 바느질을 한

무명천 손수건이며

색동저고리의 옷고름은

폭포처럼 흐르는

그의 눈물을 닦아 내기엔

부족할 따름이었다


봉대!

棒몽둥이 봉   大 큰 대

미정의 신랑이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데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고추가 남달리 컷던 연유로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께서 봉대로 작명을 하셨단다


미정이 갈전의 정참봉댁 둘째 아들

봉대와 결혼한지도 어언 십년이 되어 간다

이들의 부부애는 남달랐지만

불행히도 아직 자식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집안의 대가 끊길까 봐서

노심초사 했다

하다못해 씨받이라도 들이자고 성화다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남이자 봉대의 형인 춘대는

하라는 결혼은 안하고

도리짓고땡 섯다 마작 등

노름판과 기방이 제집인양

주색잡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천하의 난봉꾼이었다


월하, 명랑 ,도화 등

왕릉의 기방들은 그가 존재하는

이유라도 되는 듯 했다


정참봉댁은 대대로 천석꾼 집안 이었으나

춘대가 십수년만에 다 날려 먹고

이제 땅문서에도 없는

자갈밭 몇 뙈기만 남은 상태다


당시 춘대의 쩐을 발라먹은

주요 타짜들의 면면을 보면

왕릉의 장가,조가, 김가, 갈전의 이가 , 돌마래미의 여가,

농암의 신가, 수예리의 정가, 문경의 박가, 작천의 강가,

하괴의 서가, 배가 , 상괴의 전가 ,원북의 이가, 아침배미의 김가,

 죽문의 박가 등 수십여명에 달한다


이들 당대의 타짜들에겐 춘대가

호구 그 자체였다

마치 하이애나 무리들에 둘러 쌓인

한마리의 살찐 얼룩말이나 진배 없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봉대앞으로 물려준

전답 오천여평과 본가 집문서다

춘대가 날려 먹은 수만평의 전답에 비하면

쥐꼬리지만 시부모님 끼니는 굶지 않게 되었다


한번은 춘대에게 꽁지돈을 받으러 온

왕릉의 건달 조, 백, 장 등이

본가에서 연이틀이나 소란을 피우고도

땅문서 집문서 등 아무것도 건질게 없자

봉대네 집으로 와서 행패를 부렸다


미정은 웃저고리를 벗어 던지고는

입에 식칼을 물었다

그리고 양손에 무쇠 낫을 잡고서

건달들을 향해 돌진했다


건달들은 혼비백산했다


조는 논두렁으로 도망가다가 미끄러져서

한길 아래 진창논에 거꾸로 쳐박히고


백은 내리막 신작로를

짚신 바닥이 안보일 정도로 내달리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면상에 팥을 한말이나 갈았다


또한 장은 급한김에 감나무로 올라가다가 미끄러져서

들깨를 베어낸 대공 끄트머리에 푹 주저앉아

옴짝달싹도 못하고 미정에게 싹싹 빌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춘대는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노름판의 재털이가 되어

개평이나 얻고

때로는 꽁지돈이나 수금하러 다니는

백수건달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봉대는 미정이만 옆에 있어주면

세상 더 바랄게 없었지만

어깨 또한 무거웠다


그래서 과거에 급제 한 후

그때까지 아이가 안 생기면

씨받이를 들이든 친척 중에서

양자를 들이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하고는

두번이나 실패했던 과거시험에

마지막 도전키로 맘 먹고 심기일전 했다


그러나

인간사 어디 맘 먹은대로

다 되는 법은 없을 터


이제 막 세번째 과거시험을

5개월여 앞두고 돌연사를 하고 말았다


시어머니로부터

아들 잡아 먹은 여시 라고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화장 장례를 치른 뒤 사찰에 봉안하였다


미정은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사랑하는 남편 봉대의 명복을 빌고저

1관문옆 초가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는 눈보라와 비바람 천둥번개가 쳐도

빠짐 없이 사찰을 찾았고

오늘이 그 마지막 3년 탈상일이다

시묘살이나 진배 없었다


미정의 지극정성에

부처님이 은덕이라도 베푸는 듯

오늘따라 산사에는 하이얀 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탁탁탁탁탁~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탁탁탁탁탁~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탁탁탁탁탁~

.

.

.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탁탁탁탁탁~

.....


망자에 대한 탈상제는 늦은 자시에

이윽고 끝이 났다


1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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