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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회(1972년 졸업)
  39회 게시판     

대만 옥산

조회 수 12244 추천 수 0 2016.07.30 11:28:07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배운다.
머리를 채우기 위함이다.
채워지면 곧 겸허하여 질 것이다.

나는 따사한 인간이다.
그래서 팔을 벌린다.
껴안아서 따사함을 적선하기 위함이다.
껴안으면 세상은 곧 평화로워 질 것이다.

나는 도전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한발한발 오른다.
산의 솟아오름을 밟기 위함이다.
족적을 남겨 일순간 하늘조차도 거스르고 싶은 것이다.

정상으로 향한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어린 나이에 고향을 나서는 몸짓같다.
그것이 막막한 생인 것이다.
정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낮은 곳을 박차고 높은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의 도전인 것이다.

손가락을 펴서 가늠한다.
옥산의 정상을 덮고 있는 하늘이다.
산은 그 거대함을 감추고자,
하늘조차도 이용하는 것인가 보다.

하늘에 가린 정상이다.
구름에 가린 능선이다.
하늘 때문에,
구름 때문에,
가늠하는 것이 허사가 된다.
정상의 방향을 알 수가 없다.

해발 2610미터.
탑탑가(塔塔可)안부.
그곳에서 산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힘참은 어디가고 기력이 소진한다.
고산의 위력 앞에 왜소한 인간이다.
촉수를 내밀어 더듬어 가늠하건만,
정상의 그 행방을 추측할 길이 없다.

옥산은 그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 숨바꼭질 같다.
옥산은 그렇게 인간에게 농을 걸고 있다.
멀리 볼 수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 행함이 가벼울 수 있는 것이다.
옥산의 농이 인간을 산으로 유인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정상이라 가볍게 행하는 것이다.

굽이도는 산길에 접어든다.
그 굽이에 편승한 능선이다.
능선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또 시작되는 산길이다.
다가가면 정상을 닮은 능선끝자락도 숨는다.
고도 탓에 순간 눈이 가물거린다.
고산은 제일 먼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려는가 보다.

관성처럼 걷는다.
고도의 외길을 따라 걷는 걸음이다.
고도를 향하는 가파른 난간을 걷는다.
고도 탓에 순간 머리가 멍하여진다.
고산은 그 다음에 머리를 둔하게 하려는가 보다.
맞은편의 산경사면에 눈을 맞춘다.
정상을 올려다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얀 구름이 그 중턱에서 유유자적하고 있다.
산이 평온하여진다면 구름덕분일 것이다.
아래쪽의 까마득한 계곡을 내려다본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능선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졸졸 세를 합한 물의 소리가 산에서 요란하다.
산에서 깨어나는 것이 있다면 계곡물덕분일 것이다.

해발 3200미터,
직각의 한 굽이 더 돌아,
나는 다시 깨어난다.
고도에 순응을 하고 나서이다.
서서히 걷는 걸음이 빠른 순응을 만들고 있다.
나는 다시 눈을 뜬다.
산에 몰아일체가 되고 나서이다.
나는 나의 몸과 마음조차도 산에 의탁한다.
나를 비운 그 다음 순차에 산에의 몰입이 찾아온 것이다.
급전직하 가파른 산경사면을 본다.

삼나무가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 서있다.
삼나무가 연출하는 경사면의 푸름이 오히려 애처롭다.
너무나 푸르러 그 채색이 쪽빛 바다같기 때문이다.
산은 저 혼자 높아서 먼 바다를 사모하는가 보다.
뾰족한 산봉우리를 올려본다.
능선과 봉우리를 껴안고 있는 산봉우리이다.
그윽함을 연출하는 산봉우리의 거느림이 그저 아늑하다.

해발 3528미터.
세월에 소외된 배운(排雲)산장이다.
그곳에는 구름만이 머문다.
구름이 그 배회를 마치고서,
순식간에 세찬 폭우를 내린다.
인간의 도전을 꺾어 보려는 수작같다.
산산이 내리는 비를 온몸에 맞는다.
소심한 피함이 아니라 의연한 맞섬이다.
인간의 그 낌새를 알아차린 듯,
걸음 앞에 더 퍼붓는 굵은 빗줄기이다.
통하지 않으니 모아서 협박을 하는 비인 것이다.
산장 뒷 켠에 난 정상의 길을 열어주고 싶지 않은가 보다.
보물창고처럼 더 오래 그 길을 감추어 놓고 싶은가 보다.
통바위 하나가 빗장처럼 길목을 막고 있다.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같다.
바위가 그 가로막음을 거들고 있는 통천문을 돌아 정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숨이 가파르다.
그 호흡이 산의 경사면을 닮아가고 있다.
심장의 박동이 거칠다.
그 박동이 거칠 것 없이 광야를 달리는 바람결같다.
머리가 띵하다.
그 띵함이 바위에 부딫히는 옥구슬같다.
폭포수의 포말같이 아스라이 부셔지는 기억이다.

눈이 감긴다.
차마 눈을 뜨면 보지 못하는 꿈결같다.
산소의 희박을 알리는 전조에 몸이 반응을 시작한 것이다.
순간 망각의 심연 속에 빠져든다.
이기심이 그 동기가 되는 인간의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찬찬히 눈을 뜬다.
오직 걸음 하나의 움직일 공간만 본다.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고산병이 욕망의 인간을 치유하고 있다.
고산에서는 인간을 망각으로 몰아간다.
망각이 인간의 가치로 승화되고 있다.
이기심을 잊는 그 자체가 인간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해발 3800미터,
제 멋대로의 자유분방함을 떨치고서,
삼나무들이 일목요연하다.
나무들이 더 이상 자라남을 멈춘 고도이다.
그조차도 이긴 나무들이 서있다.
몸체의 껍질을 다 벗어던지고서,
주목이 하얗게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이편의 진실과 저편의 거짓처럼,
명료한 이분법으로 생존을 표현하고 있다.
하얀 줄기의 들어냄과 파란 잎의 감춤이 조화롭다.

듬성듬성한 도열이지만 일목요연한 것이다.
생명을 마감한 나무들은 하얀 속살로만 서있다.
하늘을 닮은 파란 잎새는 그 살아있음의 증표가 된다.
살아있어 바위에 기댄 줄기이다.
살아있어 하늘을 휘젓는 잎새이다.

나는 살아있어 심호흡을 한다.
손을 벌려 산의 장엄함을 영접하기 위함이다.
무엇에 그리 성이 난 것인지 잔뜩 찌프린 하늘을 올려다본다.
좁은 바위의 길을 야금야금 걷는다.
고도를 향하는 순례자처럼,
하늘로 비상하는 새들처럼.
이제는 오르는 것 그 자체가 일념이 되었다.

해발 3900미터,
오로지 바위만이 활발하다.
키 낮은 삼나무가 땅에 엎드려 있다.
나무들은 하늘바라기를 잊은 듯,
땅에 바짝 딱풀처럼 붙어서 크고 있다.
경사면의 나무가 수직으로 자란다면,
이 높은 곳에서의 나무들은 땅에 붙어 수평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 조차도 호사에 겨운 듯,
이제 더 이상 푸름조차도 없다.

모진 풀 한포기조차도 살수가 없는 고도이다.
바위만이 그 파편을 만들어 성벽처럼 적석하고 있다.
바람에 놀란 바위가 그 파편들을 흘러내린다.
땅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직 흘러내리는 돌뿐이다.
그 운동성으로 살아있음을 활발함을 증명하고 있다.
오로지 하강하는 운동성인 것이다.
그래서 바위는 활발할지언정 내리기만 하는 반쪽 생존이다.

구름이 오른다.
비가 내린다.
구름은 비와 더불어 온전한 것이다.
바람이 휘몰아친다.
비는 바람을 만나 거친 것이다.
정상에서 몰아치는 혹독한 바람이다.

비, 구름, 바람의 정상에 선다.
드디어 해발 3,952미터를 목도한다.
동서남북 사방에 네 개의 산을 거느린 정상이다.
그것은 거느림이 아니라 껴안음인 것이다.
더 높은 곳이니 외로울 법도 하지만 그것은 이유가 아닌 것이다.
더 솟아있으니 더 크게 펼쳐 그렇게 큰 포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상은 그 팔을 벌려 껴안고서 포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옥산의 정상이 그렇게 광대하고도 장엄한 포용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산에서는,
그 언제라도 늘 겸손이었다.
해발 3,952미터의 정상에 서서,
나는 뜻 모를 오기가 발동을 한다.
더 오르지 못하는,
그것이 절절한 한이 되었다.

정상이니 더는 오를 곳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정하는 것이 하늘을 이길 수 있음은,
그것은 바로 고산의 정상에 서는 것이다.
냉기를 엄습케 하는 비,
눈앞을 가리는 짙은 구름,
천지개벽을 전주하는 바람,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지에 방해가 되지 못한다.

인간이 정하는 것이 하늘을 이겼기(人定勝天) 때문이다.
더 오르지 못하는 사무치는 한을 뒤로 한 채,
나는 옥산의 정상에서 그 승천에 하염없이 전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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