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륵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들까지 첫눈에 매료되는 명승지다. 강변 높은 절
벽에 날아갈 듯 축조되어 있는 절집의 아름다움은 서양의 여러 TV에서도 한 번 가보기를 권유하는 절경이다. 절집과 강이 어우러져 있고 강 건너로는 광활한 여주평야를 배경으로 오밀조밀한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자연의 여러 요소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장소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그러나 4대강사업 때문에 신륵사 답사의 백미 가운데 하나였던 강 건너편 백사장과 미류나무숲이 완
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강변에 석축을 쌓아 둔치를 만든 뒤 나무를 심고 자전거길을 내느라고 자연의
정취를 완전히 망가뜨린 것이다. 용수 확보와 치수(治水)를 위해 4대강 사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최대한 자연경관을 보존하는 노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남한강 가운데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에서부터 신륵사 아래를 유유히 흘러 여주군 금사면 전북리에
이르는 40km 구간을 따로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마치 금강 가운데 낙화암 아래를 흐르는 4km 구
간을 따로 백마강이라고 부르듯이. 여강은 남한강 하류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물 흐름이 완만한 곳이
라 고려시대부터 내노라하는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뱃놀이를 즐기며 숱한 시‧서‧화를 남겼다. 여강은
전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시인묵객들을 손짓하여 불렀고, 그들의 시‧서‧화는 더 많은 유람객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다.
신륵사 풍광의 으뜸은 늘씬한 자태를 뽐내며 강가에 서 있는 강월헌 누각이다. 방문객들은 신륵사 경
내로 들어서자마자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강월헌부터 찾아간다. 강월헌은 원래 절벽 아래 삼층석탑
곁에 서 있었는데, 1972년 홍수로 정자가 떠내려가자 지금 위치에 철근 콘크리트로 다시 지었다. 강
월헌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멀리 여강 상류까지 아득히 한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로 넘실대는 들판과
까마득히 둘러선 야트막한 산들이 장엄한 풍경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해질녘에 강월헌에 오르면 보
랏빛 강물 위로 저녁종 소리가 은은히 퍼져나가면서 여심(旅心)을 파고든다.
남한강의 하류 지점인 여주는 수운(水運)이 활발하던 때는 나루도 많았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졌지
만, 왜정시대까지 이포나루‧조포나루‧새나루‧흔암나루‧찬우물나루‧상자포나루 등이 성업을 이뤘다.
조포나루는 신륵사 건너편 백사장 자리에 있었는데, 소금을 비롯한 생필품과 조세미(租稅米)와 사람
을 실어 나르던 황포돛배를 비롯하여, 정선과 영월에서 내려오는 뗏목까지 사시사철 성황을 이루었다. 나루들은 철로와 도로에 물동량을 뺏기면서 시들해지다가 충주와 팔당의 다목적댐 건설로 뱃길이 끊
겨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신륵사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언덕위에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묵묵히
굽어보며 세월을 삭이고 있다. 2015.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