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천 : 그때 그시절 1편 (은성문화회관 1)
다들 가난했고 생활이 궁핍했던 그 시절
오래 돼서 내용은 기억이 없고 주인공인 신영균 엄앵란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
| ||||
Re..드디어... 그 많은 내용을 모두 넣고 있을려면 머리가 디따 무거울텐데.... 그래서 걸음걸이가 그랬었나? ㅎㅎㅎ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재소설이 다시 시작된건가? 이번엔 논픽션 같은데.... 그래서 더더욱 재미있고 정감이 있다. 그리고 보니까 파이팅도 입시생 아이가 있는걸로 아는데 오늘 좋은 결과 있겠지. 애비 닮았으면 분명이 똑소리 날겨~ 오늘 시험 끝났으니 당분간은 눈치 안보고 글 쓸수 있겠구먼. 기대가 된다. 파이팅 화이팅! ^^ |
| ||||
추천 : 그때 그시절 1편 (은성문화회관 2)
높고 커다란 무대 위에는 붉고 검은 융단을 양면으로 한 커튼이 길다랗게 쳐저 있었으며 그 뒤 가 쪽으로는 쪽문이 있어 행사할 때 대기실 같았다. 또 넓은 벽에는 ‘반공 방첩’ ‘금연’ ‘정숙’ 등 붉은 글씨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앉는 좌석은 베니다 판으로 딱딱했으며 옆 사람과는 간격이 좁고, 바닥은 앞뒤 수평이 경사가 없어 앞에 덩치 큰 사람이 앉기라도 하면 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앞사람이 방향을 틀 때마다 고개를 올렸다 내렸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불편했지만 눈은 영화속으로 정신없이 빠져 들어갔다. 혹시 상영도중에 오줌이라도 마려우까봐 옆 사람에게 자리 좀 맡아 달라고 하고는 안나오는 소변을 미리 억지로 보고 나서 맡아달라고는 했지만 자리 뺏끼서까봐 얼른 불이나케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시에서 흥행했던 유명한 영화는 진작에 소문이 나서 항상 ‘만원사례’였으며 통로며 벽 쪽이며 뒤 쪽공간에도 사람들이 꽉 차서 숨도 올키 못 쉴 지경이었고 너무 시끄러워 바로 옆에서 얘기 해도 잘 안들리니 다들 흥분해서 목소리를 더 크게 했다. 겨울에는 주로 개탄으로 때는 난로 옆이 명당이고, 더운 여름에는 공중에 달린 헬리꼽터 프로펠라 마냥 생긴 큰 선풍기 밑이 인기가 좋았다. 올 때 티밥이나 옥수꾸, 군고구마, 호떡이라도 가지고 들어오면 극장 안에서 먹는 맛은 진짜 꿀맛이었다. 이윽고 “때르릉”하고 종이 울리면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먼저 우리나라 사계절을 찍은 멋진 화면과 함께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한목에 일어서는 바람에 의자소리가 쿠당탕 쿠당탕 요란했는데 모자 쓴 사람은 모자를 벗고, 다들 부동자세를 하고 엄숙하게 애국심을 가슴에 안았다. 시작전에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 대한뉴스’가 방영이 되었는데 주로 정부시책을 홍보 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 얼굴이 제일 먼저 나왔다. 라디오 에서나 간간히 듣던 국내외 상황이며 월남소식을 직접 화면으로 보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먼저 예고편을 맛배기로 보여 주었는데 다음에 할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고 궁금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본 영화가 시작되는데........ 숨을 죽이고...... 도회지에서 다 돌고, 여기 시골에는 마지막으로 끝물에 온 지라 필림이 얼매나 낡았는지 화면에는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빗줄기 마냥 가는 줄이 몹시 번떡거렸다 주로 흑백 영화가 많았고 몇 년뒤에 총천년색 씨네마스코프 영화가 들어왔는데 흑백 보다가 칼라로 보니 정말 황홀했다 그 당시 영화로는 심청전,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오발탄, 돌아오지 않는 해병, 초우, 맨발의 청춘, 미워도 다시 한번, 빨간 마후라, 남과북, 별아 내 가슴에, 연산군, 내시, 벽속의 여자, 벙어리 삼룡이, 분례기, 마부, 사격장 아이들, 비무장지대, 남자 식모, 카인의 후예,,.......등 등 멜로 드라마나, 소설을 영화 한 것 아니면 주로 전쟁 영화였다. 당시 활약 했던 배우로는 신영균, 박노식, 신성일, 장동휘, 황 해, 허장강, 남궁원, 독고성, 이예춘, 김승호, 최무룡, 김진규, 김희갑, 장민호, 문오장, 이대엽, 윤일봉, 김지미, 최은희, 도금봉, 황정순, 조미령, 문정숙, 문 희, 윤정희, 남정임, 등 이었는데 그때 그 이름이 지금까지 잊혀지질 않했다. 외국 영화로는 하이눈, 황야의 무법자, 셰 인, 백주의 무법자, 닥터지바고, 클레오파트라, 벤 허, 황야의 7인, 등 주로 서부 활극 영화가 많았는데 존 웨인, 클린트이스트우드 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였다. 간혹 영화 중간 중간에 꼭 극적인 장면에서, 곧잘 필림이 끊기곤 했는데 성질 급한 사람은 여기 저기서 휘바람을 불어대고 혹은 손가락을 입에 넣어 “쐐액! 쐐액! 째지는 소리를 내곤 했는데 가끔 교양 없는 어떤 아저씨는 “돈 물러 내라”고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래도 촬영기사 아저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다시 필림을 돌리면 관객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1-3 은 다음에) |
| ||||
Re..나 퇴근해여~ 어쩌면 이케 머리가 좋아여~~? 마치 내가 그 옛날 은성회관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붉은 커튼 ...그게 열리면 쑈 무대가 시작되었쥐~~ 언젠가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진행하고..유명한 여자가수 이미자??는 아니것 같고 누구더라~~그래 하춘화인것 같다 그 쑈를 본다고 자리에도 앉지 못한 체.. 계단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 엉덩이는 반은 들고 그야 말로 엉거주춤 자세로..다리에 쥐가 나던 말던.. 쑈 시작 시간만을 기다리는데.. 요란한 굉음(나팔소린가??..기억이 안나네...ㅋ)과 함께..둥그런 조명이 갑자기 이리저리 어지럽게 붉은 커튼을 비추다..커튼이 좌우로 쫙~갈라지면서..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오래동안 기다리셨습니다.. 뭐~ 요렇게 시작되곤 했쥐~~ 그리고 영화배우 이름이며 영화제목은 어찌 그리도 줄줄~외누?? 그참 신통방통하구만..ㅋ 박노식은 장동희와 함께 액션영화의 단골주역이었고.. 허장강은 악역을 많이 맡았는데... '마담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번 할까'란 말까지 유행시켰쥐~..아마 그리고 홍콩배우인가?..왕우 주연의 외팔이 시리즈...그거 참 재미나게 봤는 데.. 그걸 보고 오면.. 한 몇일은 사택 마게깐 뒷산에 있는 우리의 아지트..묘지에서 목검 만들어.. 서로 칼싸움도 하고 외팔이 흉내 낸다며.. 한쪽 팔을 소매에서 빼내서 몸통속에 넣고.. 나는외팔이다..내 칼을 받아라~~...ㅋㅋ 지가 무신 외팔이라고...ㅎㅎ 멜로영화는 지금 생각해도 영~ 아니었어~ 어째 좀 신난다 싶으면 끊어먹고..입술을 대는 둥 마는둥..짤라먹기 일쑤고 옷을 벗는다...꼴깍~~..침도 넘기기 전에 장면은 바껴서..벌써 옷을 입고 있지를 않나?? 에씨~~ 눈만 베렸쥐~뭐야~~..ㅎㅎ 그치만 액션영화나 전쟁영화에서 주인공이나 우리나라가(그 때는 왜? 모두 악을 물리치는 주연배우를 우리편..우리나라 또는 좋은 편이라 했는 지 몰라) 이기는 장면에서는 왜들 그렇게 박수를 치며 와~~하고 소리를 질러 대는 지..(나도 사실은 쪼끔은 그랬다..ㅋ) 에이~씨~~ 파이팅때문에 약속시간 늦었다 대치동을 7시까지 어케 가누.. 내일 또 보자...^^ |
| ||||
Re..글씨 오리맞어? 데끼 오리야. 사람이 옷을 벗던 말던 키스를 하던 말던 왜 오리가 침을 꿀꺽 삼키고 있대니? 미운오리가 우아한 백조가 되는 날이 온대면 또 몰라도..... 네가 누드로 푹 삶겨서 여러사람앞에 나서지 말고 몸조심이나 혀. 씰데없는 사람들한테 끼지 말~고... |
| ||||
Re..그때 그시절 무슨일이 있나?..궁금했었는 데.. 장편소설 집필중이었나 보다 맞아~ 그때...사택에 있던 은성회관...나도 기억 나여~ 거인 기도 눈치 봐가며.. 모르는 아줌마 손잡고..아들인 양 살그머니 따라도 들어 가 봤고.. (그때도 역시 키가 작아서 가능한 일이었쥐~~..ㅋㅋ) 극장 시작하기 한참 전(극장 청소 할떄)에... 미리 들어가 화장실이며...2층 상영실..등등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관객들이 입장할때서야..마치 표 내고 들어 온양.. 활개를 치고 다녔던 기억도 있고.. 그 칠공준..가 하는 영화...나도 봤다 그치만 나는 돈 내고는 보지 않고.. 극장 뒷편을 돌아 가면...화장실과 연결되는 창문이 있는 데.. 옆 건물과 연결되어 있어...그리로 들어가서 봤지롱~~ㅋ 지금에야 이렇게 쉽게 얘기하지만..그 때는 정말..들키면 어떻게 하나..하고 간이 콩알만해 질 때가 많았었어~~ 간혹은 기도에게 들켜.. 극장청소 하는 벌도 서기도 했고.. 하도 자주 그러다 보니.. 기도 아저씨가 내 얼굴을 기억하는 통에.. 몇번은 진짜 돈내고 들어갔는 데도.. 나만 보면 고개를 외로 꼬곤 했쥐~~(저게 또 어디로 들어 왔나?...하고 말이야..) 서커스라도 오는 날엔 그야 말로... 그것 어째 한번 볼려고...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졸라보기도 했지만.. 그때 돈 5원내지 10원은 큰돈인기라~~결국은 실패하고.. 그런다고 물러 날 내가 아니쥐~~ 별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어머니 몰래 집에 있는 쌀을 훔쳐다가.. 순모네 옆집에 있던 할아버지..할머니가 운영하는 빵집에서 돈과 맞 바꾸어 기어이 보고야 말았었쥐~~..ㅋㅋ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그 때는 돈은 귀했어도 쌀은 광산에서 배급이 되는 바람에.. 집에 쌀은 떨어지지 않았던거 같았어~ 쌀 뒤주를 보면서 아무래도 쌀이 푹~ 들어갔다며.. 형이나 나를 몇번이고 다그치는 어머니에게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어 겨우 모면을 했던 적도 많고....ㅎㅎ 아~~ 이래저래 사택의 극장은 나에게 있어서도 영원한 추억거리란다.. |
| ||||
Re..잊지못할 추억 하나, 성인식이래봐야 앞으로 너도 성인이되었으니 니인생은 너가 알아서 해야한다는둥.. 간단한 훈계와 교훈몇마디였지만 지금까지 잊혀지지않는다 그후나는 가끔주시는 용돈으로 은성극장을 몇번 찾은기억이난다, 언젠가 "쓰리보이 쑈,가들어왔다고 가은이 떠들썩할때였는데 난아버지에게 졸라서 극장으로 향했다 너무나 좋아서 친구가 기다리는 극장으로 한걸음더 빨리 가려고 철길을 질러가려고 기차밑으로 살금갈금 엎드려서 지나간나~싶을즈음 벌떡,일어났는데, 아,글쎄.. 이마가 따끔하더라구.그리고 따뜻한 그무엇이...쪼르르...흘러내리기에 손으로 훔치니 피가..나는게 아니겠어, 엄마나~기겁을 하고 역전밑에있는 약국으로 달려가 간단한 치료를 받고 쑈구경은 하지도못하고 집으로..돌아간기억..지금도 그때 흉터가 이마에 남아 있어서 그때 그기억을 되살아나게하네.. 왜 하필 은성극장이야기를 해가지구선...ㅋㅋㅋ 마지막 쑈를 하는날 구경을 하긴했지만 이참저참 그때 그기억이 되살아나네... 암튼 새로운 연재소설 기대가 되네...재밋는 추억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이야기가 쏟아질듯....축하해~!! |
| ||||
Re..드디어 연재소설은 시작되고 은성문화회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무궁무진하게 재미있는 스토리가 올라올 것 같아 미리 가슴이 설레이는구먼... 가은사람들 연애장소요 데이트장소가 여기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터이고.. 시골 끝자락에 살면서도 우리의 문화공간을 톡톡히 만들어주었고 새로운 세상에로 눈을 뜨겠끔 해준곳도 이 영화관이 아니었던가 싶다. 앞으로 엄청나게 기대가 된다. 역시 부산사나이들 화이팅! |
| ||||
Re.. 그리운 친구여! 소인 잘 쓰지도 못 하는글을 주제넘게 또 몇자 적어봅니다 혜량하여 주시고 '그때 그시절'은 소설(픽션)이라기 보다는 추억담을 적은 수필(넌픽션)에 가깝고 그냥 편하게 몇자씩 테마별로 쉬엄 쉬엄 써 보고자 합니다. 지금은 그때 그시절보다 모든것이 너무나 풍족하고 편리한 세상이지만 인정은 따뜻하질 못하고 왠지 가슴은 공허하고 감정이 메말라져 오히려 사는 맛은 예전만 못한것은 저 혼자만의 헛된 감정인지요? 세월은 모든것을 앗아가기에 결국 남는것은 추억밖에 없는지라 더 이상 나이가 들어 필림이 지워지기 전에 그때 그시절 잊혀진 소중한 기억들을 줏어모아 같이 나누고자 하오니 혼자만 안고 계시지 말고 다들 각자의 추억이 생각나시면 글 올리어 다같이 보면 더욱 재미있겠습니다. 예) 오리 선생의 답글은 저의 본글 보다도 훨씬 재미있고 현장감 있는지라 저가 바라는바 이와 같습니다 오리 파이팅! |
| ||||
추천 : 그때 그시절 1편 (은성문화회관 3)
학교에서 단체로 보러 가는 영화는 주로 전쟁 영화가 아니면
|
| ||||
Re..아! 옛날이여~ 요즘은 극장구경 한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 참 불가사의한 일일세 그려. 어찌 그리 소상히 기억하고 있누? 혹시 초딩때 숙제삼아 했던 만득이 일기라도 있는거 아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세세한 것 까지 기억을 하냐구 사람이.... 그나저나 그때부터 올꿍이는 끼가 다분했구먼. 돈 냄새 맡는데는 그때부터 가능성이 보였구먼. 개구녕으로 선기랑 만득이 들여보내면서 그냥 보내줬겠어? 숙제는 기본이고 하다못해 눈깔사탕 몇개라도 얻어 먹었겠지. ㅋㅋㅋ 좌우기당간 무지 재밋다. 파이팅 화이팅! |
| ||||
Re..그때 그리움
나도 그때 사촌오빠를 따라서 성인영화를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
| ||||
Re..그때 그시절 1편 (은성문화회관 3) 그때로 돌아가서 은성회관의 의자에 앉아있는 기분이라고 좋은글 너무 잘 읽고 간다 |
| ||||
추천 : 그때 그시절 1편 (은성문화회관 4. 끝)
마치고 관객이 쉽게 나가라고 5분 정도 일찍 큰 문을 열어 놓았는데 그때 무슨 “ 와!~ ” 하는 소리와 함께 발자국 뛰는 소리가 들리며 애들이 한 보따리 들어 왔는데, 항상 보면 그 중간에는 만영이가 섞여 있었다. 다 끝났는데 뭣 하러 들어오지? ........진작에 들어오던가! 하며 아쉬워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만영이와 그 조직들은 극장에서 관객이 다 빠져 나간 뒤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각자 ㄱ 자로 된 군용 후라쉬를 하나씩 들고, 바닥을 쥐 잡듯이 훓고 있었는데 동전을 줍기도 하고 간혹 지폐도 떨어져 있었다.........수입이 짭짤했다. 내가 알기로는 만영이가 총 대장이었고........ 그 날 수확한 수입금은 일단 만영이가 전부 회수를 한 뒤 공금으로 30%를 떼어놓고 모두에게 똑 같이 분배를 했다. 그리고 공금 중 일부는 극장 찌끼미 뚝발이 아저씨 한테 얼마가 갔다. ( 마칠 때 들어오는 것도 아무나 못 들어 왔으니까 ) 그래도 만영이는 그런 조직생활을 해서인지 의리가 있었고 희생정신이 강했다. 비축된 자금으로 동지들을 위해서 놀이에 필요한 때기, 다마, 팽이, 연, 시게또 등 등 각자가 개인부담으로 갖기 힘든 놀이 물품을 여유 있게 준비하여 같이 즐기기에 소홀함이 없도록 열심히 챙겼다. 가끔 학교 친구들 한테도 국화빵이나 군밤을 사주기도 했는데 기마이가 좋았다. ( 이상 최도사 자료제공 ) 좌우지간 영화가 끝나 ‘ THE END ' 라는 글씨가 화면에 나타나며 극장 안 불이 밝게 켜지면 그제서야 다들 정신이 돌아와 떨어져 앉았다가 “ 흥아야1” “언니야!” “아재!” “아지매!” “숙아!” “임자!”하고 서로 부르는 소리가 요란했고 그러면서 극장 밖으로 떠 밀리다 시피 나오면 여기저기서 같이 가자며 찾는다고 난리다. 한밤중 인데도 극장 앞 광장은 완전히 시장통이었다. 귀신영화나 공포영화를 본 후에는 무서워서 혼자가기가 겁나 같은 동네 사람들 끼리 붙어서 같이 갔고 성인영화나 진한 애정영화를 보고 나면 뭇 처녀총각들은 그 여운을 못잊어 우째 좋은 일이 없을까 하고 집에는 안가고 극장 앞에서 ‘날 잡아 잡수!’ 하고 이리저리 배회 하는 것 같았다. 집을 향하는 발걸음은 아직 영화의 감흥이 남아 있어 다들 흥분되어 있었으며 지가 무슨 영화속의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여 촌녀가 극중 서울 말을 흉내내기도 하고, 궁디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머플러를 이리 맸다 저리 맸다..........갖은 애교 짓을 다 부리는데.......... 남 들이 보면 꼭 실성한 것 같았는데........ 그래도 남이 뭐라던 본인은 흥겨워 했다 ( 이상 전 여사 자료제공 ) 더러는 집으로 오는 길에 몸이 달아서 청춘남녀가 보리밭으로 사라져 사랑을 불태우기도 하였는데 그 다음날 밭 주인은 “ 어느 년 놈들이 밭을 다 망쳐놨노!” 라고 큰소리로 떠들어 쌋는데.......... 그러다, 자기도 과거에 그런 전과가 있었는지......... 슬며시 싱겁게 웃고는 쓰러진 보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했다. 당시 시골에는 여관이나 러브모텔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폭신한 묏등 이나 보리밭은 훌륭한 야전침대 구실을 했다. 물이 좋은 애정영화가 들어오면 주로 처녀총각들이 주 관객이었고 총각들은 구두에 광을 번쩍번쩍 내고, 어슬픈 가다마이에 바지는 날을 세우고 머리는 뽀마드를 발라 넘겼는데........ 처녀들은 빼딱구두에 짧은 미니를 입고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갈밭,작천,무두실,성저,도리실,하구산,완장 등에서 숱하게 몰렸는데 당시 한때 서울에서 온 만득이 아저씨가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키며.......... 시골 처녀들을 울린 사건이 있었는데...........지금 까지 전설로 남아있다. 이처럼 영화의 세상이 안겨준 색다른 문화는 ..... 사람들의 일상에 크게 미치면서...... 두고 두고 이야기 거리를 만들며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욕구와 희망을 갖게 했다. ............................... 이야기가 끝이 없지만 한 번은 극장비 5원을 급하게 챙겨서 불나게 뛰어 가다가 1원을 잊어버려 동전 찾는다고 왔던 길을 계속 헤매다가....... 결국 찾지도 못하고 영화도 못보고.........발바닥에 물집만 생겨가이고..... 그 후유증은 오래 갔다. .............................. 순모는 4구 극장 가까이 살았는데.......... 빽이 좋아서 항상 무료 입장을 했고, 거의 프로가 바뀔 때 마다 안 본 영화가 없었다. 물론 짝지인 나 한테는 그 뒷 날, 본 줄거리를 다 이야기 해 주었고 때로는 같이 가기도 했다.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신문물에 대한 견문이 넓었고, 또 위에 형 누나들이 많아서 정말 아는게 많았는데............ 나는 많은 정보를 간접적으로 순모를 통해 많이 배웠다. 우리는 그렇게 유년시절에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나는 당시 세상을 더 크게 일깨워준 꼬치친구 순모를 고맙게 생각한다. ................................................. ................................................. 누가 그랬던가 처음이 즐거우면 나중이 괴롭다고 영화는 잘 봤는데, 밤 늦게 집으로 다가가는 내 마음은 무척 무거웠다. 혼 날 생각을 하니 겁도 나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대문을 몰래 열고 .........안방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살금 살금 안방을 지나 갓 방으로 .........불은 꺼져 어두운데....... 열고 들어가 옷을 벗는둥 마는둥 가만히 이불속으로 발을 들이일면 동생들은 자는 척 안자고 기다리고 있다가 이불속에서 발길질을 하며 영화 본 이야기를 해 돌라고 졸라 쌋는데..... 옆 방에서 어머니가 들을까봐 겁이 났다. 숨을 죽이고 답답한 이불속에서 조용조용 스토리를 엮어 가지만...... 몇 줄거리 못가서 동생들은 하나 둘 잠에 떨어지고.......... 나도 졸음이 와 눈꺼풀이 내려 앉으며....... 아까 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꿈나라도 가곤 했다. 그 후 세상은 변하여 60년대 후반부터 TV가 보급되면서 우리를 그렇게 감동시켰던 영화의 문화는 침체기를 맞아 시들해 갔지만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때 그시절 영화가 있었던 그 유년의 추억이 한번씩 그리워지곤 한다. ( 1편 은성문화회관 끝. 2편은 다음에 ) |
| ||||
Re..넘재밋어요~ 내가본영화는 미워도 다시한번. 신영균,문주란이 주연의 김정훈 꼬마의 눈물겨운 스토리는 아직도 뇌리에 스치지만 그이상은 기억이잘안나네.. 쓰리보이쑈 하나, 글쎄..그때 그시절 극장 광장이 넓다는 기억하나, 그쪽으로 올라갈기회가 별로 없었거든.. 하여튼 아름다운 추억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즐거워.. |
| ||||
Re..아무리 건망증이 심해도 우째 여주인공에 문주란이가 다 나왔을꼬... 번번히 맹숙이땜에 내가 배꼽을 잡아요. 하긴 세월이 흘렀으니 문주란인지 문희인지 헷갈린만도 하지 뭐. 아침에 얹어 논 곰국솥도 가스불을 껏는지 켜놨는지 조차도 기억이 안나는데.... 그래 맞다 문주란이가 영화에 나와서 '공항의 이별'을 불렀는갑다. |
| ||||
Re..호호호 에구...혼나도 싸다,, 문희.응그래 문희가 정말로 이뻤지.. 내가 왜, 문주란이라고 썼을까? 이해가 안가네..~참, |
| ||||
Re..개봉박두 꼭~ 퇴근 무렵에 글 올리냐??..ㅋㅋ ( 일전에 퇴근무렵에 노래 신청한다고..35 DJ한테 혼난 거 엉뚱한 곳에 화풀이...ㅋ) 영화가 끝나면 왜들 그리~ 빨리 나갈려고 하는 지는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충 영화라는 게..줄거리를 짐작해 보면...여기서 끝이다...감은 잡힌다만.. 아직도 상영 중인데도 한두사람씩 벌써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미누리나 도로실 무두실에서 왔다면.. 갈길이 멀다고 이해는 간다만.. 넘어지면 코 닿을때 있는 사택 사는 변모씨..글씨~ 걔도 그렇더라니까...ㅋ 순모가 중학교를 도회지로 유학가고 나서 해진이랑 몇몇 말썽꾸러기(?)들과 어울려 다닐 때였던가? 당시 유행했던 스몰바지(..군복에 깜장 물 들여..나팔바지로 만들어 입었었쥐~ㅋ)를 요즘 엉뎅이 다~ 보여주고 유행된다는 골반바지나 되는 줄 아나?.. 엉덩이에 반쯤 걸치게 입고 양손은 바지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체... 껌.. 째깍째깍 씹으며... 영화 끝난 극장앞에서 괜스레.. "누구야~~같이 가자.."..하며 "날 잡아 잡수~"(작가의 표현임..ㅋ)하고 이리저리 서성되는 사냥감(?)이라도 잡히지 않을까...극장 앞을 서성대던 그 때도 그립구나 뭐~ 나쁜 뜻은 아니고...당시 극장이라는 게..어찌 보면 데이트 장소였고..또.. 만남의 광장 역활을 대신했던 그런 곳이었으니까... 저녁 밥 먹고 항상 모이는 곳이 극장 앞이었고.. 또 그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것 같아 솔직이는 멀리서 극장구경(그 때는 영화구경이라 하지 않고 꼭~극장구경 가자고 그랬었어~) 마치고 집으로라도 갈라 치면 극장앞에 서성대는..만나서 좋을것 없을것 같은.. 골치아픈 친구들(?)을 피해 가기도 하곤 했었쥐~~ㅋㅋ 추억의 극장얘기 대따 재미나게 읽었는 데... 다음에는 또 뭐유~~? 기대하시라~~!..고대하시라~~!...개봉박두!!!!!....ㅋㅋ..나 퇴근함~~다~~^^ |
ㅎㅎㅎ
학교에서보다 저 문화회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인생의 쓰디쓴 현실도, 그 몽롱한 환상도..
갈 때는 눈을 반짝이며 달려갔다가 돌아올 때는 반쯤은 졸면서
탄먼지 날리는 기차 레일 위를 가로질러 돌아왔죠.
후린트 고고 작전, 그리고 드라큐라 영화도 기억나네요.
드라큐라에선 다른 장면보다 뭔가 끓는 커다란 욕탕같은 장면만
기억나네요. 문화회관 앞의 공중목욕탕과 헷갈리는건가요?
( 이 목욕탕 관련 울고웃을 얘기거리도 함 써주시면... )
그리고 신성일의 들개란 영화도 있었던 것 같고..
미성년자 관람불가였겠지만,
아직 미성년자도 못되는 나이여서 아마 봤겠죠. ㅎㅎ
정말 재미있는 글이고 멋진 댓글들입니다.
언제나 파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