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신경림 -
어려서 나는 램프 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데라 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 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뽑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음새겼다,
소년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 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맣은 것을 들었다,
허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