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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회(1960년 졸업)
  27회 게시판     

서정주와 박정희

조회 수 6151 추천 수 0 2017.06.06 09:56:34


미당은 시인이요 국문학자다.

미당을 논하려면 먼저 그 분의 시세계와 학문 얘기부터 꺼내는 게 순서다.

그런데 시와 학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대뜸 친일분자라고 욕지거리부터 해댄다.

그것도 수백 편의 주옥같은 시와 평론은 젖혀둔 채 한두 편의 왜국 찬양 시만 가지고.


미당이 박정희를 찬양했다는 제목을 보고 인터넷을 찾아 들어가 봤다.

달랑 미당이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을 지지하는 시를 썼다는 내용뿐이다.

좌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베트남 파병을 욕하는가?

베트남 파병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인터넷에 미당이나 박정희 욕을 올리지도 못했을 터인데.


1975년 10월 9일 한글날에 있었던 일이다.

동국대학교 국문과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던 미당은

학생들을 인솔하여 여주에 있는 영릉(英陵)을 찾아갔다.

국문과의 오랜 전통에 따라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에 헌화하기 위해서였다.


일행이 영릉에 도착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경호원들만 대동한 채 영릉에 참배하고 막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해 전 광복절 경축식에서 영부인을 잃은 뒤부터 공식적인 행차를 자제하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한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박 대통령이 세종대왕께 참배를 하러 온 것이다.


미당은 그 소박한 행차에 적잖이 감명을 받았다.

그때까지 미당은 박 대통령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다.

미당은 박 대통령에게 두 가지 미안한 일이 있었는데,

월남 파병 지지는 그것과 아무 관계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신념에서 자발적으로 쓴 시였다.


1970년 미당은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그때 미당은 무슨 일을 핑계로 부인을 대신 보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인에게 손수 훈장을 걸어주면서

혹 어디 편찮으신 것은 아니냐고 정중하게 미당의 안부를 물었다.


미당이 정녕 박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만사 젖혀놓고 달려가 훈장을 받으며 몇 마디 찬사를 보탰을 터이다.

다음해 육영수 여사의 지방행사에서 강의를 좀 해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왔을 때도

미당은 선약을 핑계로 청와대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미당은 그러한 일을 자존심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훈장도 직접 받으러 갈 수 있었고 육 여사의 행사에 동행하여 강의를 해줄 수도 있었지만,

권력에 아부하는 것 같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거절했다는 것이다.

욕을 하려거든 이러한 내막을 자세히 알아본 뒤에 거기에 맞춰 해야 신빙성이 높아진다.


미당은 박 대통령이 자신보다 몇 살 아래지만(실제는 두 살 아래),

먼발치에서 박 대통령이 영릉에 참배하는 모습을 본 뒤부터

속에서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고 고백했다.

박 대통령에게 전하지도 않은 이 속마음도 권력자에게 아첨했다고 욕먹을 일인가?


미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전기를 집필했다.

그러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전기는 집필하지 못한 걸 미안해했다.

박 대통령 서거 후에 혼자서 느낀 이 속마음도 욕먹을 일인가?

좌파들이 보수층을 비난할 때는 대체로 이처럼 근거 없는 모략인 경우가 많다.


나는 미당을 폄하하는 좌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국화 옆에서>나 <푸르른 날> 같은 미당의 주옥같은 시를 읽어나 봤을까?

읽어보고도 그 순정한 미당의 시심이 와 닿지 않아 그리도 욕을 해대는 것인가?

참으로 웃는 아이 얼굴에 침을 뱉고도 남을 고약한 자들이다.    ( 2017.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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